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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폭로!

최영미 시인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의 카페에서 시집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돼지들에게 등장하는 수많은 돼지들에 대해 일부 폭로했다.

 

최영미 시인은 1987년 대선 기간 진보 단일후보였던 백기완 후보 캠프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을 폭로했다. 그는 "그때 당한 성추행 말도 못한다"며 "선거철에 합숙하면서 24시간 일한다.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라며 "학생 출신 외에 노동자 출신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다 봤고 회의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택시에서 자신을 성추행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누군가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면서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1961년 9월 25일생으로 올해 58세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서지현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을 연 결정적인 인물들 중 하나이다.

최영미 시인은 1961년, 군인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선일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80학번)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영미 시인은 대학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시위에 가담하여 관악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하기도 했으며, 칼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론》을 《자본 1》(이론과 실천사)로 번역 출간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최영미 시인은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4년 문단 및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내고, 그 이후 시인과 소설가 및 미술 평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2017년 종합인문교양 계간지, 계간 『황해문화』 97, 겨울호는 특집과 창작 작품, 문화비평, 포토에세이 등 모든 꼭지를 페미니즘으로 기획하였고 최영미에게 시를 청탁하였다. 이에 최영미는 고은을 사실상 지칭하며 문단내 성추행과 성폭력을 폭로하는 시 "괴물"을 기고하여 미투 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후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미투 운동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JTBC는 최영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JTBC는 시 ‘괴물’을 소개하며 최영미와의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방영하였다

이상 최영미 시인 폭로에 관한 소식이었다. 이어 밑으로 백기완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백기완은 1932년 1월 24일생으로 올해 87세이다. 대한민국의 좌파운동가.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白弘烈)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백태주(白台周)는 천석꾼의 부자로 장련면의 유지로 있으면서, 1922년 장연농민공제회 창립 당시에 회장으로 재임, 1923년에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 장련지부 설립에도 참여를 하였으며 앞서 3.1 운동 당시에도 수천장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은율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민족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 백홍렬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재직한 바 있고 장련청년회 집행위원, 장련청년동맹 검사위원을 지내며 청년운동에도 관여하는 등 당시의 인텔리의 전형이었다. 한편, 두 부자는 각각 1923년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 수해와 지진피해가 있었을 때와 1934년 삼남지방 수재 당시에 의연금을 기부하고 구휼에 힘쓰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조부 백태주가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어주다가 일경에 발각, 고문 끝에 옥사당한 이후 가계가 급격히 몰락하게 되고 만다.

한편, 백기완은 백범 김구 선생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김구는 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감리서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했었는데, 황해도 은율 땅을 몰래 지났을 때 백기완의 조부 백태주가 백범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극진히 돌봐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방 후 그의 부친 백홍렬이 그를 데리고 서울로 가서 백범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백범을 따르게 된다. 백범 또한 그를 좋아해서 그가 즐겨 읊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휘호로 써서 주기도 하고, 중학교까지 학비를 대주리라 약속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처럼 백기완은 백범 김구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백기완은 재야 운동가로 1960년대 한일협정반대운동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후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6월 항쟁 이후 열린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야운동권에 독자후보로 추대돼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와 군부독재 종식을 촉구하면서 중도 사퇴했다. 5년 뒤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야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지만 낙선하였다.

 


백기완은 현재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가사의 원작으로 알려진 시 '묏비나리'를 짓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집회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7차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한 백기완 소장.

백기완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반대 및 이석기 전 의원의 구속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평생에 걸쳐 남북통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기도 했으나 위와 같은 활동은 그가 NL계열에 속한다거나 성향이 같다기보다는 그의 민주화 운동 경력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사실 1992년 대선때는 NL계열의 지지를 못받아서 별로 높은 득표를 올리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당시 NL계에서 김대중 후보가 성향은 같지는 않지만 일단 당선 가능성은 그나마 높기는 하니,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 지지를 했기 때문이었고, 그러다보니 득표를 많이 가져가지는 못했다.

 


백기완은 경평축구가 한창이던 시절 성장했고 스스로도 축구선수가 되려다 집안이 몰락하여 좌절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의외로 축구 관련한 기사가 검색해보면 나온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전후로는 순우리말 축구용어를 쓰자고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정몽준과의 대담에서도 그러했고, 특히 신문선과의 대담에서 "슛"을 "때려", "골인"을 "꽈이 탕"으로 쓰자는 등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강력하게 순화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로 1990년대에 비해 '스로 인'을 '던진다'로 바꾸어 쓰는 등 순화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 "꽈이 탕"만은 당시 대부분의 축구 커뮤니티에서 "저게 대체 뭔 생뚱맞은 소리?"란 반응이었다(...)  2018년(86세) 4월 심장병 수술 때문에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댓글
  • 프로필사진 이계절 솔직히 이젠 지겹다... 그놈의 미투 2020.02.12 12:28
  • 프로필사진 중전마마 시인인가
    책 장사인가?
    한물간 연예인들이 즐겨 쓰는 노이즈 마켓팅....
    용기 있는 진정한 미투는 당했을 때 하는 것....
    2020.02.12 12:44
  • 프로필사진 고마해라 선거철 되면 시작이냐? 벌써 30년도 더된일을가지고..
    우리도 학생운동할 때 혼숙했었다 아무도 그런일 없었고 20ㅡ30명 자는 방에서 그런짓 한다는것도 말이 안된다
    2020.02.12 12:58
  • 프로필사진 뜬금포 뜬금없는 미투....지금와서 누굴 위해서 폭로하는지 모르겠네 30년도 더 된 일을 들추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그 당시 우리 국민들 수준이 높지 않았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한 둘일것같나??? 미투만 하다가 1년 지나갈 수도 있다...그냥 가슴 속에 묻어놔야했어 2020.02.12 13:31
  • 프로필사진 우주무리 33년전에 왜 그 잘못되고 왜곡된 사회의 이야기를 왜 지금 성숙된 사회에서 폭로라고 하는것인가 ?
    그때의 잘못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려하냐 ? 정말 심하다~
    2020.02.12 13:39
  • 프로필사진 이사간다 이양반 주기적으로 강연할테니 1급 호텔에 방 내달라고 떼 쓰던 그분?? 2020.02.12 13:42
  • 프로필사진 이영현 미친 기레기
    이따구 소설을 보도하는 이유는 뭐냐
    2020.02.12 18:23
  • 프로필사진 고도리 그 당시 성추행을 폭로하고 고소는 안했는가?
    그리고 아무리 선거캠프라고 하지만 20명 이상 남여가 한 숙소의 한방에서 혼숙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그런 방에서 잔사람은 어떤 정신세계인가?
    한 사람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으니, 선거캠프에 있었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과 경험을 했는지 알고싶다.
    당신만이 경험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었던 그 당시 사람들은 이 시로 비난 받아야 하는가?
    그 당시의 상황을 폭로하고 시로 썼다면 그게 시인가?
    이성인가 지성인가 감성인가?
    시를 빌려서 시를 모독하지 말자.
    2020.02.12 18:40
  • 프로필사진 월드짱 자다보면 손넣는 버릇이 있어요‥잠결에 자기도 모르게‥ 2020.02.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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